일상 소사

666! 내가 겪은 황당함의 극치. (2004.5.4)

靑雲 2011. 10. 25. 15:15

운동장처럼 넓기만 했던, 텅 비어 가슴이 허전했던 그 공간에 아주 오랜만에
차곡 차곡 쌓여가는 모래더미를 보니,
오늘은 주룩주룩 내리는 비마져 정겹고, 반갑다.

환경문제와 현지주민들과의 마찰로 모래 채취가 금지된 지 거의 한달여---
자꾸만 낮아져 가는 모래더미를 보며,
모래 빨리 갖다 달라는 현장들의 아우성을 들으며 한없이 지쳐만 갔는데
다시금 한 켯 두 켯 쌓이는 모래를 보니
메마른 대지를 촉촉히 적시는 비처럼 마음은 그렇게 여유로와 진다.

그런데,
퇴근무렵.
장부를 정리하면서 시멘트 재고를 파악하는데 아뿔사, 이럴수가!
온종일 내린 비 탓으로 판매량은 66포! 남은 재고는 666포!
바로 그 악마의 숫자 666!!!
비록 믿지는 않지만 갑자기 섬뜩한 기분이 들어 부랴부랴 판매량을 고쳐 재고량을
수정하려는데, 한시간전에도 보이던 수정액이 아무리 찾아도 보이질 않는다.
이곳 저곳 찾다 포기하고 할 수 없이 볼펜으로 재고량을 수정할 수 밖에 없었다.

퇴근길.
'666'이라는 숫자가 계속 마음에 걸린다.
'천천히, 조심해서 운전하자' 마음 먹고 집으로 향하는데
아니나 다를까 옆 골목에서 갑자기 차가 고개를 들이 밀기도 하고,
잘 가던 앞차가 급정거 하기도 하고......
어째튼 집까지 무사히 와서 쉬고 있는데,
마눌이 시뻘개진 얼굴로 다연(6살된 딸)이가 없어졌다고 빨리 찾으라고 성화다.
같이 놀던 친구들은 다 집에 있는 걸 확인했는데, 집에 간다던 다연이만 행방불명
된 거다.
부랴부랴 반바지에 반팔티만 걸치고 우산도 없이 비바람 고스란히 맞으며,
관리소로 달음질 쳐 안내방송을 부탁하고,
놀이터, 지하 주차장, 이곳 저곳 뒤져도 보이질 않아
비 오는데 설마 거기까지 갔으랴 하면서도 급한 마음에 옆단지로 뛰어가려는데
핸드폰이 '렛잍비"를 외쳐댄다.
다연이가 집에 온다고 전화를 했단다. 휴~~~
알고 보니 집으로 오다 또다른 친구를 만나 그 친구네 집에 가서 놀다가 방송 듣고
전화했단다.
암튼 이 녀석은 오지랍이 무지하게 넓다.
한시도 가만히 집에 있으려고를 안한다.
화가 나서 마눌에게 앞으로는 밖으로 못나가게 발목에 열쇠를 채우라고 했다.
(퍼어억!!!)

지금도 밖에는 부슬부슬 비가 내린다.
그래도 큰 일 없이 무사히 하루를 보낸 것 같아 다행이라는 생각에 마음 편히
켬퓨터 앞에 앉자 이렇게 글을 끄적인다.

지금까지가 5월 3일 바로 어제 써서 올리려던 내용이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666'의 망령은 그때까지도 끝나지 않았던 거다.
글을 다 쓰고 등록버튼을 클릭 하는데 이게 등록이 안된다.
조금 기다렸다가 다시 등록 버튼을 클릭하니 켬퓨터에 접속이 끊겼다는 메시지가
뜬다. (두번째로 겪는 일임)
으~~~!!!
무려 한시간을 투자해 끙끙대며 작성한 그 글이......그냥 허공으로 훨훨~~~!!!
켬퓨터를 깨뜨려 버리고 싶다는 충동을 꾹 참고,
그저 적의에 가득 찬 눈으로 켬퓨터를 지긋히 노려보다 허탈하게 나는 그냥 돌아설 수 밖에 없었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한 번 썻던 글 다시 쓰기는 정말로 죽기보다 싫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하도 억울해 이렇게 머리 끙끙대며 하루 늦은 글 다시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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