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소사

연 날리기 (2004.11.15)

靑雲 2011. 10. 25. 15:26

그러니까 10월초순,
유치원 다니는 딸 아이가 유치원 10월 행사표를 가지고 와서 여길 보란다.
< 10월 30일 : 아빠 참여 수업 - 마라톤과 연날리기. 장소는 인천대공원> 을 가리키며.

그리고 "아빠 갈거지요?"라고 확인한다.
'갈 수 있을까?'라는 의문은 들지만 벌써부터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서 "그럼, 갈 수
있을거야"라고 대답은 했다.
'가야지'라는 확정적인 말을 못하고 '갈 수 있을거야'라는 조금 애매한 대답밖에 할 수
없는 게, 내 일의 성격상 하루 앞도 내다볼 수 없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특히나 월말과 월초는 이것 저것 처리할 일도 많고, 신경 쓸 일도 많다.
사실 처리할 일 자체에 소요되는 시간이야 얼마나 걸리겠냐마는, 이것 저것 신경을
쓰다보면 <정신적인 여유가 없다>라는 말이 정확할 것 같지만.

그리고 틈만 나면 딸아이는 쪼로로 달려야 월중 행사표를 들이밀고 10월 30일을
나에게 확인시킨다.
내 기억으론 최소한 5번도 넘게.
'결국 만사 제쳐놓고 갈 수 밖에 없겠군'하는 최면에 걸렸다.

그리고 10월 30일 오후 2시. 보무도 당당히 인천대공원에 갔다.
마라톤이야 아이를 데리고 같이 뛰는 거니 무슨 별 문제가 있겠는가?
산책하듯 딸아이와 손 맞잡고 이런 저런 이야기 나누며 무사히 끝냈는데 연날리기에서
일이 터질 줄이야.
전날 밤 '내일 연을 무지하게 높이 날려서 아빠의 자랑스러움을 아이 가슴에 가득 심어
줘야지'라고 속으로 생각하며 딸아이와 같이 무진 정성으로 만든 그 연이 나를 배신할
줄이야...

그 날은 바람이 거의 없었다.
그렇지만 다른 아빠들이 만든 <가오리연>은 그런대로 높이 나는 것도 있었다.
(대부분은 잘 날지 않았지만.....)
하지만 이놈의 방패연들은 하나같이 날지를 않는다.
바람이 없는 상태에서 가오리연보다 무게가 조금 더 나가서 그런가 보다라는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그렇지. 소싯적 연 날리던 가락이 있지라는 오기가 생겨, 바람이 없으면 바람을
만들면 되지라는 생각에 그 넓은 호수 옆길을 땀 뻘뻘 흘리며, 딥다 달리며, 무진 애를
쓰니 지성이면 감천이라던가 드디어 연이 뜨기 시작한다.
하아~~~그러나~~~
2, 30m 정도 뜨던 연이 바람의 도움을 받지 못하니, 밀고 당기는 나의 필사적인노력에도
불구하고 다시 힘 없이 내려 앉는다.
그렇게 10번 정도 시도했을까.
나의 옷은 땀에 절어 원래의 무게를 잃어 버린 지 오래고,
갑작스런 전력질주에 놀란 나의 다리는 후들거려 제 원래의 기능인 정상적인 보행도
간단치 않을 정도가 되었을 때,
뜰듯 말뜻 감질만 내던, 이미 부상병처럼 처참하게 여기 저기 너덜거리며 비명 울리던
연이 마지막 추락의 결과로 장렬히 생명을 다함으로써,
나의 눈물 겨운 연날리기는 결국 허무한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오랜만에 아빠의 진면목을 딸아이에게 유감없이 발휘하고 싶었는데......

이틀 지난 어제까지도 다리가 후들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