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소사

생일날의 소회(2003.12.21)

靑雲 2011. 10. 25. 15:03

띠리리링~~~띠리리링~~~
열심히 일을 하고 있는데 전화벨이 요란스럽게 울린다.
퇴근 후에 계산동에 있는 ‘쉘부르’라는 곳에서 만나자는 마눌의 전화다.
내 생일이라고 자기가 한턱 쏜단다.
원래 생일날은 집안식구들이 다함께 집에 모여서 저녁을 같이 먹었었는데,
올해는 이곳저곳 불려 다니느라 서로가 피곤하고해서 전체모임은 생략하고
조용히 보내기로 약속했는데 그게 못내 아쉬운가 보다.

퇴근 후, 쉘부르에 도착해 안으로 들어가니 마눌과 아이들이 반겨준다.
라이브레스토랑이라 무대에서는 무명가수의 멋들어진 노래가 한창이고......
이종환이 운영하는 곳인데 라이브 음악이 좋다고 주위에 사는 마눌의 측근
들이 적극 추천해서 선택했단다.

그런데,
가져온 메뉴판을 보니 이게 가격이 보통이 아니다.
가격표를 보는 마눌의 얼굴이 조금씩, 아주 조금씩 검어진다. 아닌척 하지만
속으로 이게 아닌데 하는 눈치다.
그래도 성의가 괘씸하고 노랭이마눌이 한 턱 쏜다는데 마다할 내가 아닌지라
제일 비싼 스페셜정식을 선택했다. 삼만오천원짜리. 비싼만큼 맛있겠지 하는
기대를 가지고......아이들은 만팔천원하는 스파게티(휴~ 뭔 국수가 18,000원
이나 하는지), 마눌은 이만원하는 무슨 까슨갈 선택했다.

이윽고 주문한 음식이 나온다.
큰 접시에 바닷가재 조그마한 것 반 마리, 꽃게 반 토막, 소고기 동그랗게 조금.
이게 전부다. 거기에 마요네즌지 치즌질 범벅을 한 채.
으~ 이게 무슨~~~
그래서 아이들이 주문한 스파게티는 맛있는지 조금 먹어보니 그것도 영 아니다.
그나저나 왕성한 식욕을 자랑하는 나인지라 나온 음식을 다 먹고, 맥주 두 병을
시켜서(이것도 장난이 아니다. 조그마한게 병 당 8,000원이란다. 휴우~ 이 놈의
나라가 어디로 가는 지~~~) 병 체 홀짝 홀짝 마시며 라이브 음악을 감상했다.
무명 가수들인데 노래는 맛갈나게 잘 부른다.
그리고 8시가 되니 김범룡이 나와 노래를 하는데 내가 보기엔 아니다. 그나마
‘바람 바람 바람’은 귀에 익어서 그런대로 괜찮았지만 나머지 노래는 영 아니다.
차라리 무명가수들의 노래가 훨 낫다.
본전 생각에 12시에 하는 민혜경의 라이브까지 보기로 했는데, 아이들이 집에
가자고 마구 보채 김범룡의 노래 중간에 쉘부르를 나왔다.

집에 돌아오는 길 내내 마눌이 음식도 아주 별로면서 비싸기만 하다고 투덜댄다.
차라리 집 앞에 있는 오천원짜리 순대국밥이 훨 낫다고.
물론 나도 그 말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마요네즌지 치즌질 범벅한 음식을 먹어 그런지, 비싼 음식을 먹어 그런지 속이
메스껍고 느끼한 게 얼큰한 국물이 생각난다.
그래서 집에 도착하자마자 라면을 끓여 달래서 그 국물로 쓰린 속을 달랬다.

마침 그 날은 우리집 월급날이라 인터넷뱅킹으로 월급을 입금하면서
비싼댓가 지불해 검어진 마눌의 얼굴과 성의가 괘씸해 십만원을 더 입금했다.
이렇게 되면 내생일 비용은 내가 지불한 건가?
그래도 내일 통장 열어보는 마눌의 얼굴은 다시 희어 지겠지.

며칠 전의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