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과 계양산을 오르다.(2003.7.22)
일요일 아침 9시. 졸린 눈 부릅뜨고 억지로 일어났다. 보통 5시면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하는데 오늘은 쉬는 일요일이라 어제밤 늦게까지 스카이라이프로 상영하는 <두사부일체>와 <은밀한 유혹>을 시청하고 늦게 잠(밤 3시 30분도 넘은 것 같다.) 든 탓이다. 대충 아침을 때우고 혼자 축구공을 가지고 아파트옆에 있는 중학교에 갔다. 아들과 같이 가려 했지만 이미 켬퓨터에 달라 붙어 가지 가자는 내 말에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 치사한 녀석.
학교에 도착하니 운동장에는 이미 축구경기가 한창 진행중이라 할 수 없이 학교 운동장 가장자리를 몇 바퀴 돌고 나서 스텐드 콘크리트 벽을 상대로 슛팅 연습을 하고 혼자 드리볼도 하니 땀이 홍건히 흐른다. 일이 운동이라 건강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었는데 요즘 들어 여기 저기 찌뿌둥한 것 같고 소화도 잘 안되는 것 같아 새삼 운동을 하기로 결심하고 실천에 옮기는 중이다. 한 시간 남짓 땀을 흘리고 나니 몸이 개운해진 것 같아 기분이 좋다.
내친 김에 마눌과 아이들을 데리고 계양산으로 출발했다. 이대로 집에서 비비적거리다가는 소중한 휴일을 잠으로 허비해 버릴 것 같은 예감 때문이다. 예감이 아니고 분명 비몽사몽으로 이리저리 뒤척이다 하루를 무의미하게 보낼게 틀림없을테니까. 계양산에 도착하니 비록 도심속에 있지만 공기 내음부터 향긋해 진다. 나무와 흙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분 좋은 내음. 정화된 깨끗한 산소를 폐속 깊이 흡입하니 기분이 벌써 상쾌해진다.
계양산! 해발 395m의 산. 그래도 인천에서는 가장 지근에 있고 제일 높은 산. 베이스 켐프(?)에 마눌과 딸을 남겨놓고 드디어 아들과 둘만의 등정을 시작했다. 딸을 데리고 오르기에는 무리가 따를 것 같아서다. 해발은 낮지만 경사도 있는데다 바위산이라 삐죽삐죽한 돌부리가 제법 날카롭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들도 산행이 처음이라 조심스런 마음이 들기도 하고. 산행은 부드러운 흙을 밟는 걸로 시작된다. 딱딱한 콘크리트 바닥과는 전혀 다른 감촉. 이런 길은 신발을 벗고 맨발로 흙의 감미로움을 느끼며 걷고 싶은 유혹에 빠지게 한다. 그러나 마음뿐. 조금 지나니 통나무로 만든 계단 길. 산행에서 만나는 계단 길은 대부분 상당히 힘든 코스이기 마련이다. 힘이 빠진 상태에서 무미건조하고 지루하게 이어지는 길이므로. 그러나 계양산의 계단 길은 초입에 있기 때문에 다행히 그런 기분은 들지 않는다. 다만 벌써부터 느껴지는 아들놈의 시뻘개진 얼굴과 거칠어진 숨소리가 마음에 쓰이지만. 아니나 다를까 계단을 다 올라 와서는 물도 먹고 쉬었다 가잔다. 이제 시작인데. 잠깐 쉬고 다시 산행 시작.
3분의 1쯤 올라 왔을까 아들의 행동을 보니 이건 가관도 아니더군. 땀을 뻘뻘 흘리며 몸은 90도로 구부러지고 무지하게 힘들어 한다. 그리고 이제 그만 내려 가잔다. 아! 1차적 한계. 예를 들어 오랜만에 축구를 하다 보면 시작해서 5분 정도 지났을 때 느끼는 아주 힘든 고비. 그런데 그 고비를 넘기면 그 후에는 별로 힘들지 않던 그 고비. 그래서 또 잠시 휴식. 그 휴식 시간에 아들과 삶에 대하여 잠시 심오한 대화를 했다. 인생을 살다 보면 힘들고 어려운 고비가 항상 있는데 그 때마다 포기하면 개그콘서트에서 나오듯 '실패한 인생'이 된단다. 그래서 그 고비를 용기있고 끈기있게 극복하는 자만이 성공해서 웃을 수 있단다. 자 아들아 힘을 내자 등등. 수긍하는 것 같더군. 그래서 다시 산행을 시작했다. 페이스를 조금 늦추니 이제는 제법 잘 따라 올라온다. 이제 고비는 넘긴 것 같군. 조금 더 올라 가니 정상이 눈에 보인다. 그리고 조금은 급경사. 그래서 마지막 힘을 비축하기 위한 휴식. 아들에게 시 한 수를 읇어 줬지. 중학교때 배운거라 기억이 다 나지 않아 대충 대충. '넘어지고 깨어지고라도 한 조각 심장만 남거들랑 부둥켜 안고 가야만 하는 족속이 있다. 고지가 바로 저긴데 예서 말 수는 없다.'라는. 기억이 잘 나지는 않더군. 그리고 곧바로 정상을 공격했다. 아주 오랜만의 산행이라 나도 숨이 턱에 차더군.
드디어 정상. 야호!!!
"아들아 드디어 너는 포기하지 않고 끈기있게 노력하여 조그만 성공을 한 거다. 장하다."했더니 씩 웃더군. 얼굴은 시뻘겋게 달아 올라서. 날이 흐려서 시야가 조금 좁아 아쉬웠다. 하늘이 맑은 날은 영종도 신공항도 보이고, 서울 북한산 자락도 아주 선명하게 보이는데. 그래서 浩然之氣도 조금은 느낄 수 있었는데. 그래도 아들에게는 최초로 산에 올랐다는 자부심이 좋은 기억으로 남겠지. 여기는 어디고 저기는 어디고 손가락을 짚어 이야기를 하고 하산을 시작했다. 힘들게 산을 오르다 보면 다리가 풀려 내려오는 길이 힘들기도 해서 조금은 걱정이 됐지만 애라 그런지 금방 회복이 되어 생생하게 잘 따라 내려 온다. 베이스 켐프에 도착해 마눌과 딸의 합류로 아들과의 첫 산행은 기분좋게 마무리 됐다.
시내로 들어 와서 샤브샤브칼국수로 점심을 해결하고 집으로 돌아와 샤워하고 한 잠 푹 자고 일어나 이 글 쓴다.
이상 지루한 보고 끝.